[야구] 송진우는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가


송진우는 대한민국 국적의 야구선수로 지난 1989년부터 2009년까지, 21년 동안 KBO 리그에서 활약한 좌완투수다.

KBO 리그에서 통산 최다 승리, 최다 이닝,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갖고 있으며 1992년에는 최다 출전, 최다 승리, 최다 세이브(세이브 포인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빙그레 이글스 그리고 한화 이글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선수이며 KBO 리그에도 굵직한 기록을 남긴, 전설과도 같은 선수다.


아래에서는 마이크 트라웃, 리오넬 메시, 타이거 우즈, 카를로 안첼로티, 마이클 조던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이어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적의, 야구선수였던 송진우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였는지 알아보겠다.




1. 21년 동안 쓴 대기록




송진우의 통산 성적은 672경기, 3,003이닝을 던져 3.51의 평균자책점, 210승 153패 17홀드 103세이브다.

KBO 리그 역사가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200승과 3,000이닝을 넘긴 유일한 투수이며 당분간 아니 한동안은 이 기록이 깨지지 않을 것이다.

20년 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선수야 계속해서 나올 수 있고 치러야 하는 경기 수도 많아져 기회는 열려있다고 볼 수 있지만

시즌마다 15승, 180이닝을 던지는 투수라고 하더라도 14시즌은 던져야 210승을 채우고 17시즌은 던져야 3,003이닝을 채우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기록을 '과거', '정립되지 않은 마운드 분업화'를 이유로 들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동의하지만 수년 아니 20년을 넘게 뛴 선수의 기록을 깎아내릴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시대를 뛰었던 모든 투수가 보통 그렇게 마운드에 올랐고 때를 가리지 않고 팀을 위해 공을 던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준수한 성적을 거뒀고 앞서 말한 것처럼 누적 성적이 저렇게 대단할 수 있었던 건 관리에는 인색했던 상황에 선수의 능력만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다 승리, 최다 이닝과 더불어 최다 탈삼진 기록까지 갖고 있는 송진우는 최다 패배, 최다 피안타, 최다 피홈런, 최다 4사구, 최다 실점, 최다 자책점 기록 역시 갖고 있다.

혹자는 이를 불명예스러운 기록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경기에 나서 많은 승리를 거둔 만큼 패배도 피안타도 피홈런도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함께 송진우는 각종 최고령 기록도 갖고 있다.

지난 2000년에는 만 34세 3개월 2일의 나이로 최고령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고 2005년에는 만 39세 6개월 23일의 나이로 최고령 완투 및 완봉승을 거뒀다.

이후 만 42세 6개월 28일의 나이로 최고령 선발승, 만 43세 1개월 23일의 나이로 최고령 구원승, 3일 뒤에는 최고령 홀드를 기록했다.

같은 해에 최고령 경기 출장(만 43세 2개월 10일)도 기록했는데 이는 투수뿐만 아니라 타자를 포함해도 최고령 경기 출장 기록이다.


송진우 이후 국가를 대표할 만한 좌완투수가 여럿 나왔고 그들에게 KBO 리그가 작은 무대일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기 때문도 있겠지만

송진우가 기록한 모든 기록이 좌완투수로서의 기록이다 보니 언제나 기록 측면에서 그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이런 선수들에겐 늘 '시대를 타고났다면 어땠을까'하는 의문이 따라붙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KBO 리그에서 기억하기 충분한 기록을 쓴 송진우는 위대하다.




2. 야구인으로서 끊임없는 도전




송진우는 프로에 늦게 데뷔한 선수다.

대학 졸업 이후 프로 무대를 밟기도 했지만 1988 서울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했다.

시대적으로 비일비재하게 있었던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록 측면에서 불리하면 불리했지, 유리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진우가 일반적인 선수와 달리 그리고 시대에 맞지 않게 오랜 기간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좋은 신체 능력과 정신력 그리고 엄청난 노력과 도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시속 140km 중반에 이르는 빠른 볼을 던진 송진우는 놀라울 정도로 좋은 슬라이더를 던질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구속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정통파 투수로서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아질 때 송진우는 서클체인지업을 연마했다.

지금까지도 체인지업, 서클체인지업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송진우는 이것을 후배라고 할 수 있는 구대성, 류현진에게 전수되기도 했다.


직구와 한 개 이상의 변화구를 던지다 여러 이유로 다른 구종을 더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방황하는 선수가 적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송진우가 스타일을 바꾸면서 오랜 기간 프로 무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건 선수로서 필히 해야만 하는 도전이지만 성공하기 어려운 도전인데 송진우는 성공했다.

덕분에 같은 세대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비교적 초라하게 은퇴할 때 송진우는 여전히 프로 무대에서 공을 던졌다.

박수받으며 물러나는 것도 베테랑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프로 무대에서 뛸 수 있는 기량으로 평가받고 있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도 베테랑의 몫이다.


송진우에 관한 과거 기사를 찾아보면 송진우는 매우 유연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된 훈련 뒤에도 회복이 빨랐다고 한다.

아이싱을 하지 않는 선수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투수에게 필수적인 아이싱을 하지 않은 게 정말로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이를 고수한 것을 볼 때 경험 이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고 그것은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더 나은 경기력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정해진 틀에 맞춰 몸을 단련하기보다 자신에게 맞는 단련법을 찾는 데 시간을 들이고 도전했다고 볼 수 있다.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마무리한 뒤에 일본에서 지도자 교육을 받은 뒤 투수코치로서 현장에 있었다.

중간에 해설위원을 맡았었고 많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투수코치로서 성적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고 직접 말할 정도로 좋은 시간이었다고 할 수 없지만 이제는 독립 야구단의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간다.


야구인이라면 선수 이후 코치 그 이후에는 감독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모두에게 그러한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실패를 경험하다 보면 포기하기도 마련인데 송진우는 선수 시절과 마찬가지로 도전을 이어가려 한다.



3. 선수의 권익 보호에도 앞장선 선수




송진우는 최근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설에 힘쓴 인물이기도 하다.

구성원의 잘못이 단체의 존재 의미를 퇴색시키는 건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창설 과정에서 겪은 진통을 생각하면 이렇게 망가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창설 당시에도 앞장섰던 송진우는 지금도 자신의 확고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설에 앞장선 선수들이 아주 힘겨운 시간을 보냈었기 때문에 당시 송진우의 결단은 대단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여러 선수로부터 존경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며 이를 생각한다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달라져야 한다.

다만 선수의 권익 보호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회장을 필두로 현역 선수부터 은퇴 선수까지 함께 노력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모든 선수를 대표해야 하는 입장에서 알아서 권익이 보호되는 최고의 선수가 다수를 위해 나서주길 바라는 걸 막연하게 기대할 수 없다.

구단과의 마찰은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선수에게는 큰 부담이며 그게 팀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이렇게 구설에 오르면서 누구도 쉽게 나서기 어려운 환경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기대보다는 따가운 눈초리를 마주해야 한다.


새로운 회장은 이미 선출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역이 아니어도 좋고 굳이 야구인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체육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단체의 회원과 다른 직업,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이가 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힘쓰는 경우를 찾을 수 있고 모범적인 사례도 있다.

KBO 리그를 대표할 만한 투수로 21년의 선수 생활을 보내면서 여러모로 노력한 송진우 그리고 그를 전후로 같은 노력을 한 선수들의 정신을 잇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되길 바란다.




결론



송진우는 여러 선수와 함께 KBO 리그를 더욱더 수준 높은 리그로 만든 선수다.

그가 21년 동안 수많은 타자를 상대하면서 영광스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고

단순히 기록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영광이 아닌 동료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힘쓴 인물이라는 점에서 조금 더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해설위원으로 있으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고 직접 생방송으로 들은 바셀린에 관한 이야기 역시 충격적이었다.

당시에는 마땅한 도구가 없었고 과하게 발라 경기력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는 해명은 있지만

크고 작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부분부터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부분까지 부정 투구로 간주하는 폭이 넓은 만큼

이것이 확실하게 해명되었다고 또는 문제라고 할 수 없다든지 유리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글러브에 발랐다는 이야기가 해명하는 과정에서는 손가락에 바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이는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셀린을 통해 이득을 보기 시작했다면 이를 알았을 때부터 적발되기 전까지 더 나은 성적을 위해 사용했을 거라 생각한다.

부정한 방법으로 성적 향상에 도움을 받았던 운동선수가 유사한 이유로 다시 적발되어 한층 더 무거운 징계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게다가 신체에 직접적으로 투약하는 것이 아닌 만큼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어 지속해서 사용했다면 적발되기 쉬웠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가 쓴 대기록이 부정 투구로 점철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그가 직접 만든 논란도 있지만 그의 긍정적인 측면은 야구인으로서 매우 모범적이었다.

해외 진출의 문턱은 앞으로도 높아 절대다수는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마무리하게 될 텐데 송진우의 기록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대졸 신인이라고 하더라도 프로 무대에서 곧장 던질 수 있지도 않고 신인왕이라고 해서 5년, 10년 뒤에도 그 선수가 프로 무대에 있을 거라 단정할 수 없다.

분업화가 이뤄진 이후로 특정 선수가 전천후로 기용되지 않는 것도 기록을 깨는 데 어려운 요인이기도 하지만

송진우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 KBO 리그를 대표할 만한 투수로 부족함이 없는, 대기록을 쓴, 모든 선수를 대표하기 위해 노력했던, 전설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위대한 선수다.


글 : 아우구스투스 [네이버 블로그, 아우구스투스의 스포츠 바인더 / 티스토리, Mr. YANG's DESK 운영 중]

이미지 출처 : 중앙일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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